세상살이는 처음이라/오늘 일기 한피스

2~3개월 블로그를 쉬었다. 그리고 이것저것.

유영하는 바다젤리 2025. 3. 6. 05:30

  오블완 챌린지를 하면서 블로그 목적성에 맞지 않는 글을 많이 썼는데, 그 과정에서 흥미를 다 잃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일상 기록 목적이 크다 보니, 아무리 모자이크를 하더라도 사진 업로드 과정에서 불안한 점이 있었다.

 

  특히 여행 관련 포스팅은 여행 시점을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시작부터 끝까지 묘사하도록 노력했는데 이것도 꽤 지치게 하는 이유였지 싶다. 그리고 '포스팅해도 되는 것'과 '포스팅하면 안 되는 것'의 경계가 있어 어느 정도 긴장하게 되는 요인이기도 했고.

 

  퇴사한 지 반년이 넘었다. 포스팅은 하지 않았지만 식품기사, 위생사 모두 합격했고 12월 하순쯤부터 본격적으로 취직을 준비중인데 정말 쉽지가 않다.

 

  성인 이후로는 본인 인생은 본인 책임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20대 인생은 10대의 결과물이고, 30대 인생은 20대의 결과물이라고도 하더라. 그냥 다들 그러길래 그런가보다 했는데, 서른이 되고 보니 이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

  어린 시절은 기억도 잘 안 나지만, 기억나는 거라고는 대부분 왜 나한테 그랬는지 묻고 싶은 일들이 대부분이고, 실제로 그 영향이 20대 전반에 자리하더라. 그리고 서른이 되고 나니, 이제야 20대에 만들어놓은 것들을 기반삼아 뭔가 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야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위치'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되었고, 내가 그동안 무엇을 했다고, 이런 능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20대는 10대 시절의 영향을 받으며 지내 왔기에, 아직도 눈 앞이 깜깜하다. 아직도 이력서를 낼 때마다 내가 왜 이제야 대학을 졸업했는지, 왜 아직도 신입인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겁나고, 이력서 미열람을 볼 때마다 아 나이 때문에 걸러졌구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든다. 누군가는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하겠지만 설명해야 하는 인생은 평생을 피곤하게 한다는 교수님 말씀이 계속 생각난다. 그리고 사실 설명하라고 물어봐주기라도 한다면 좋은 사람이다. 보통은 묻지도 않고 판단하니까.

 

  살면서 정말 미움을 많이 받았다. 부모님부터 시작해서 세상 모든 게 내 적인 것 같았고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 더 억울했던 것은, 내가 사회성이 부족한 것은 맞았지만 남자였다면 문제되지 않는 수준이었다는 것. 몇 안 되는 (그 순간이나마) 나를 친구로 여겨 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해줘서, 내가 그렇게까지 엉망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면서도 그 사실이 얼마나 분했는지.

  어릴 때부터 내 인생은 전생의 죄로 벌을 받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래서 심리검사를 처음 받았을 때 (MMPI문항이었던가?) 이러한 문항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지금이야 혹시 실패하면 더 힘들어질 것이 무서워서 자살하지 않는 것이지만, 어린 시절에는 '벌을 받는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죽지 못했다. 지금 죽으면 다음 생에 이어서 남은 벌을 받아야 할 것 같았거든.

 

  그렇게 미움받았는데도, 나랑 만났던 남자들은 날 미워하지 않더라. 헤어지고 나서 연락해도 다들 화내지 않고, 걱정해주거나 혹은 정말 잘 됐으면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내가 좋은 연인이어서였을까 단순 인간에 대한 이야기였을까 생각해봤는데 후자가 더 가까운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살면서 헤어진 여자친구를 보고 잘 됐으면 했던 건 처음이라고도 했다. 본인보다 능력있는 사람이 왜 그렇게 기가 죽어 있느냐고 했다. 

  고맙지, 정말 고마운데, 그럼 대체 나는 왜 이렇게 살았을까, 왜 지금도 이렇게 힘들까. 왜 아직도 이렇게 미움받을까. 내가 바뀌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해서, 외모도 대화 방식도 많이 바꿔보려고 노력했다. 스트레스가 되지 않는 선에서. 'Small talk'라고 하는 것들도 짧게 할 수 있게 되었고, 아직도 남들은 '왜 그렇게 연하게 하느냐'고 하지만 나에게는 최선인 수준에서 화장도 하고, 머리도 주기적으로 다듬고 다니게 됐다. 아직도 이런 것들이 제일 힘들지만.

 

  아마도 주위 사람들은, 내가 이런 것들을 힘들어한다는 점에서 '남자였다면' 괜찮았을 거라고 하지 싶다. 하긴 지금 타고난 것 그대로 남자였다고 하면 겉으로 보이는 것에 크게 하자가 될 것은 없으니까. 화장이야 원래 안 하는 거고, 옷이야 깔끔하게만 입으면 잘 꾸미고 다니는 것이고, 무표정으로 다녀도 필요할 때만 웃으면서 다정하게만 말하면 성격 좋은 것 아닌가. 꼼꼼하지 못한 것은 심각한 수준은 아니니, 남자들은 원래 그런 것이 되었겠고, 바다 좋아하고 산 좋아하는 것은 선머슴이 아니라 남자다운 것이었겠고. 지금 성격에서 남자였다면 하자가 되었을 것은 담배 싫어하고 욕하는 거 싫어하는 것 정도? 선비소리 듣긴 했겠네. 외적인 것도 이미 지극히 평균적인 체격에 키니까, 한 174~176선에 그냥 평범한 체형에 이목구비 좀 또렷한 정도? 이정도면 대충 잘생겼다는 말 들으면서 살 수 있었을걸 키는 좀 아쉬워도 하자가 될 수준은 아니고.

 

  내가 문제일 거라고, 뭔가 바꾸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고 타고난 것을 많이 바꿨다.

 

  다들 그렇게 살겠지만. 그런데 10대~20대 초반 시절에는 상담을 하러 가더라도 '어린데, 예쁜데, 왜 그러냐고' 했다. 그런데 밖에 나가면 '못생겼다.'고 했고 23살쯤 되고 나니까 '늦었다, 나이 많다'고 하더라. 이 갭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서 스스로 더 바꿔봤다. 아마도 사회에서 늦었다거나 못생겼다고 했던 것은, 늦었다는 것은 상대적이었을 것이고 심리상담사들은 보통 석사 이상이기 때문에 23살은 정말 어렸겠다. 그렇지만 사회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당시에 대부분 고졸 정도였고, 19~20살부터 아예 회사나 정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들 눈에는 내가 나이가 많았겠지. 외모의 경우에도 심리상담사들은 꾸미는 것이나 관리 유무는 둘째치고 멀쩡하고 괜찮게 생겼다는 점을 중점으로 봤겠고,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대체로 (대부분 20대 극초반이 하는 알바라는 것이 막노동 아니면 서비스직이기 때문에)서비스에 맞게 잘 꾸미는 사람들이었으니 그런 차이가 있었겠지. 그런데 이걸 그 때는 몰랐고.

 

  20대가 되었을 때, 20대 중에 여러가지를 해결해야 남은 인생이 괴롭지 않으리라는 것은 느꼈다. 그런데 그 때는 아무리 도움을 요청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더니, 이제 와서 '너 늦었는데?' 하더라.

 

  여기에 다 쓸 수는 없겠고, 내가 겪은 일들을 다 말하면 직접적인 증거를 들이밀기 전까지 다 믿어주지도 않는 사람들이 태반이라 겪은 것들이 기껏해야 28년 산 사람이 겪기에는 공교롭고 많은 일들이었음은 안다. 하지만 짧은 기간에 그 모든 일을 겪었다는 것이 믿지 못할 지점일 뿐 각각의 경험 한 둘 정도는 '누구나' 겪은 일이기 때문에 또 '엄살 피우는' 사람으로 치부되곤 하더라.

 

  그런데 이런 경험들이 흔하다니. 한국은 기본적으로 사회에 신뢰자본이라는 것이 없는 게 아닌가 싶다. 흔히 치안이 좋다면서 카페에 노트북만 놔둬도 아무도 훔쳐가지 않지만 자전거는 훔쳐가는 엄복동의 나라라느니 장난을 하고, 밤길을 돌아다녀도 걱정이 없는 나라라고 하는데 이 말은 맞다.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를 믿나? 내가 겪은 일들 자체도, 믿어야만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부모나 학교 선생과 같은 사람들과 연관된 일이 열에 여덟이다. 그리고, 내가 겪은 일들은 반드시 포장해서 별 것 아닌 웃어도 되는 일로 만들어야만 하더라. '20대 초반에 뭐 했냐'는 질문에 순진하게 '어떤 일이 있었다.'라고 하면서 우는 것은 술자리에서도 용인되지 않는 일이었다. 나는 반드시 '그냥 방황하다 보니까 늦었어요ㅎㅎ'라고 대답해야 한다.  솔직해지는 순간 '고생한 사람'이 아니라 '약한 사람'이 되어 공격받는다. 힘들었다고 하느니 멍청했다고 해야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기 싫으면 깊게 묻지 않고 뒷말을 하지 않으면 되지 않나? 사연 없는 무덤 없다고, 누구나 하나쯤은 사연이 있는데 왜 다들 겉으로는 사연따위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 '고생'이라는 것은 사회에서 인정하는 것만 고생이다. 예를 들면 군대에서 한 고생은 훈장이다. 출산은 군대보다는 인정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애 낳고 키우느라 늦었습니다.'하면 다들 그런가보다 한다. 어느 정도 나이가 찬 여자들이 모이면 다들 애 낳고 키우면서 고생한 이야기를 하고, 애 없는 여자는 '본인 마음대로 편하게 산 여자'가 된다. 일부러 도망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몸이 아프거나 너무 가난해서 공익이나 면제로 빠지게 되면 '꿀 빤 새끼'가 되고. 아무도 규격 밖의 이야기는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앞으로 일기로 쓴 글은 일정 기간 공개하고 나면 모두 비공개로 바꿀 예정이다. 이 블로그에서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여러 정보가 모이면 내가 누구인지 알 수도 있겠지.

 

  그래서 다들 잘 사는 것 같다.

그래도 다들 행복하세요. 나는 기어이 행복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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